저는 1995년 12월의 마지막 날 고대 그리스 철학과 초기 교부들의 삶이 숨쉬는 그리스 땅을 밟았습니다.
그리스 아테네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외국인을 위한 그리스어 강좌를 들으면서 아테네 대학교에서 피타고라스 철학을 공부하고자 했습니다.
수많은 나라 중에 왜 하필 그리스에서 공부하고자 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고전이 그리스 문화에 바탕하고 있어서 그러한 문화적 영향력에 이끌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가 당시의 나에게 해준 것도 없고 그리스에서 공부하는데 특별한 도움을 준 것도 없지만, 고대로부터 이어진 그리스 철학과 문화의 힘은 저의 사고 속 기저에 남아 그리스를 매력 가득한 환상의 나라로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들어본 적도 없는 알지 못하는 나라였고, 그리스인의 10명 중 10명은 저에게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고 물었습니다.
한국인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잘 모르는 나라였지만 혹시 아는 그리스인들도 '아, 김정일' 이라고 외쳐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을 돌아 25년이 지나 다시 돌아온 그리스에서 전혀 다른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최근 급속도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문화는 유럽 문명의 출발점이자 세계문화 1번지로 통하는 그리스에서도 급속도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로 대표되는 케이팝과 기생충으로 알려진 한국영화, 그리고 오징어게임으로 전 세계를 흥분시킨 한국드라마의 힘은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크레타섬에서 초기 그리스어 알파벳이 만들어졌고, 미케네 시대에 현대적 의미의 문자가 유럽에서 최초로 탄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어는 전 유럽에서 문자의 시대를 열고 그리스의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최고의 발명품입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이 가진 그리스어에 대한 자부심은 매우 큽니다. 최근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을 인도네시아 부톤섬의 찌아찌아 부족이 사용한 것을 보면서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데, 전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비롯한 수많은 언어의 어머니 격인 그리스어를 가진 그들의 자부심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리스인들이 최근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테네 대학교와 데살로니가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아테네에 있던 한인 2, 3세를 위한 한글학교에는 그리스인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습니다. 또, 많은 그리스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자 개인과외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문화와 한글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보물 1호가 있는 파르테논 신전 한복판에 세우는 거대한 이정표입니다.
저는 이따금씩 어떻게 25년 만에 이런 변화가 있을 수 있지? 라고 반문하게 됩니다. 대체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것이 그리스와는 또 어떤 연관이 있을까를 되물어 봅니다.
많은 정보방송과 학자들은 현재 진행되는 케이컬처의 성장에 대하여 저마다 많은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성장, 초고속 인터넷 강국, 문화를 경제에 접목시키는 힘,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는 국민성, 빨리 빨리 문화, 한국인이 본래 가진 흥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충분히 근거가 있고 일리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리스에 살고 있기 때문에 혹시 그리스와 관련된 내용은 없을까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내린 결론은 아주 단순합니다.
저는 그리스가 전 세계에 선물한 가장 큰 보따리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대략 2600년 전부터 그리스의 대표적 폴리스인 아테네는 민주주의를 실시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전 세계의 수 많은 나라 중에서 오직 그리스만 민주주의를 했다는 사실 입니다.
그리고 로마에 의해 그리스가 멸망한 이후 민주주의는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르네상스 이후 다시 세상에 나온 민주주의는 이제는 전 세계의 모든 국가의 기초 이념이 된 제도입니다. 이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변화 입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의 가장 중요한 1조 1항이 바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선언입니다. 고대 그리스에 민주정이 있었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민주주의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갑자기 민주주의를 말하는 이유는 제가 생각하는 한국문화의 진정한 힘이 '민주주의'로 부터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동아시아 3개국을 비교해 보면 자명해 보입니다. 90년대 세계 1위 국가를 꿈꾸었던 일본 문화는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그러던 일본 문화는 현재 보잘 것 없는 경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고 있는 중국은 문화공정을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문화는 전혀 세계로 나가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세계인들에게 비난 받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가장 큰 차이는 민주주의의 실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 국가이자 인권 탄압국인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은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국민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고, 하나의 당이 거의 무제한 집권하는 일본은 정상적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평가입니다.
그에 반해 우리 대한민국은 때로는 싸우고, 반목하고 시끄러워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민주주의적 목표를 향하여 한 걸음씩 착실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더 나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있고, 그 결과 자유로운 창작물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며 전 세계에 문화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선물한 그리스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또한 문화 1번지에 한국문화를 더 깊이 뿌리내리는 일에도 온 힘을 쏟아 사랑하는 땅 그리스가 한국문화로 더 풍성해지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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